[이덕환의 과학세상](105) 콩의 정체는
식물성 에스트로겐 성분
'이소플라폰' 항산화 효과
`식물성 쇠고기' 또는 `최고의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있는 콩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건강에 좋고 암 예방에 특효가 있다던 콩이 오히려 암 환자들에게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안전한 먹거리에 대해 불안해하던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고약한 소식이다. 도대체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콩에 대한 이런 소식의 충격이 큰 것은 그동안 우리가 콩의 효능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콩은 폐암, 중풍, 치매, 통풍 예방, 변비, 비만, 노화 방지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콩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나 만병통치의 신약(神藥)인 셈이다. 그런 콩으로 만든 두부와 된장을 물려준 선조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콩의 효능도 `동의보감'이 증명해 준다. 콩(大豆)이 `오장을 보호하고, 위장을 따뜻하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검은콩은 `중풍이나 열독에 의한 부종을 치료하며, 부인병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본초강목'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물론 현대적 의미의 체계적인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민간에 전해오는 속설들을 정리한 내용이다.
현대 의학에서 콩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콩을 많이 먹는 동양의 일부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유방암과 전립선암의 발병률이 낮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러나 콩을 많이 먹는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채소와 생선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낮은 암 발생률이 반드시 콩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콩에 다양한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성인이 필요로 하는 단백질을 섭취하려면 육류는 400그램을 먹어야 하지만, 콩은 140그램만 먹어도 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콩만으로 모든 아미노산을 충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콩에는 메티오닌이라는 필수아미노산이 들어있지 않다. 콩이 뛰어난 먹거리이기는 하지만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콩의 의학적 효능은 `이소플라본'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이소플라본은 생체 내에서 비교적 강한 항산화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식물의 입장에서는 미생물이나 해충을 물리치는 훌륭한 화학무기가 된다. 그런 이소플라본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기대다. 특히 이소플라본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젠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식물성 에스트로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일, 채소, 차, 적포도주의 효능도 대부분 이와 비슷한 성분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이소플라본의 효과에 대한 긍정적인 주장만 지나치게 과장돼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식물성 에스트로젠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오히려 암 발생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의학적 경고도 있었고, 갑상선 이상과도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었다. 실제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식물성 에스트로젠이 풍부한 클로버를 많이 먹은 양들이 불임 증세를 나타냈던 경우도 알려져 있다.
호주 사우스웨일스 주의 암협회가 밝힌 내용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것이었다. 콩의 항암 효과가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특히 호르몬 이상에 의한 암을 치료하기 위해 `타목시펜'이라는 항암제를 복용하는 경우에는 콩에 들어있는 식물성 에스트로젠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콩이 암을 예방하고 고쳐주는 최고의 영약(靈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식품으로서의 콩의 가치를 부정하지도 않았다. 콩이 좋다고 해서 지나치게 편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애써 만든 자료의 본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언론의 책임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