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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4시30분, 사상 최대 '미니빅뱅'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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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탄생의 비밀 `빅뱅` 재현한다

기사입력 2008-09-09 04:11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의 국경 산악지대 인근 유럽입자물리연구소에 있는 거대강입자가속기의 검출기. 섭씨 영하 270도로 유지되며 신(神)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의 흔적을 찾아내 존재 여부를 실증하기 위한 장치다. <매경DB>
세계 과학계의 눈과 귀가 10일 스위스 제네바로 집중된다. 우주대폭발을 뜻하는 '빅뱅'을 재현하기 위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ㆍLarge Hadron Collider)가 14년간의 공사 끝에 10일 가동을 시작한다.

이날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빅뱅을 재현할 양성자 빔을 가속기에 주입시켜 양성자 간의 충돌을 일으킨다.

물리학계의 최대 숙제이자 우주 탄생과 물질 구성의 비밀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힉스입자' '초대칭입자' '암흑물질' 등의 존재 검증에 온 인류가 함께 나서는 순간이다.

◆ 80개국 과학자 9000명 참여

= LHC는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의 국경 산악지대에 있다. 둘레만 27㎞에 달하지만 수 ㎞ 간격으로 통풍시설 전자제어시설 냉각시설 등 시설동이 보일 뿐 거대한 원형가속기의 모습은 겉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가속기가 지하 깊숙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지상의 잡음과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고 실험에 대한 외부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가속기는 지하 100m에 터널을 뚫어 건설했다. 전체 길이가 27㎞에 이르는 원형이다.

처음 기획이 이루어진 1994년 이후 건설비로만 80억달러(약 8조원)가 투입됐다. 참여하는 과학자도 80개국 9000여 명에 달한다. 한국 과학자 60여 명도 이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한다. LHC의 핵심시설은 역시 양성자 간 충돌이 발생하는 충돌기다. 총 6개의 관측기가 지하에 있는 LHC의 교차점에 설치돼 있고 그중 '아틀라스(ATLAS)'와 'CMS'가 가장 많이 쓰이게 될 대형 관측장치다. 하지만 빛의 99.99% 속도로 양성자를 가속해 충돌을 만들어내는 장치를 구성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CERN은 LHC를 '우주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홍보한다. 양성자를 약 27㎞ 둘레의 원형궤도에 잡아 두려면 엄청나게 강력한 자기장이 필요하고 이런 자기장을 얻으려면 영하 271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자석이 필요하다.

실제로 충돌기 터널에는 양성자 빔을 운반하는 2개의 파이프가 들어 있고 다시 각 파이프는 액체 헬륨으로 냉각되는 초전도 자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2개의 파이프에서 나온 양성자 빔은 서로 터널의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여러 개의 추가 자석들은 빔이 4개의 교차점으로 가도록 조정한다. 이 교차점에서 충돌이 일어나면서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발생하게 되는 것.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내부 모습. 지하 터널에 묻혀 있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는 무려 27㎞에 달하며 수 ㎞ 간격으로 통풍 전자제어 냉각 등 각종 시스템 설비가 갖춰져 있다.
양성자는 원자의 핵 속에 들어 있는 입자로 전자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다. 과학자들은 양성자를 입자가속기에 넣은 뒤 가속기 터널을 1만바퀴가량 돌리면서 이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다. LHC 가동이 계속되면서 각종 기기가 안정되면 가속기 안에서는 양성자끼리 1초에 6억번 정도의 충돌이 일어난다. 그 충돌 순간의 온도는 태양 중심 온도의 약 10배에 달할 정도다.

올 3월 미국에서는 'LHC 안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미니 블랙홀이 생기고, 이 블랙홀이 지구를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을 담은 이색 소송이 제기된 적이 있다. 이는 양성자가 충돌할 때 아주 작은 공간에 여러 입자가 갇혀 밀도가 엄청나게 높아지는 현상을 우려한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미니 블랙홀은 수명이 너무 짧아 주위 물체를 집어삼키기도 전에 사라진다는 것. 이미 지구에는 지난 수십억 년간 LHC 내부보다 훨씬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우주 입자가 지구로 떨어졌고 미니 블랙홀도 수없이 생겼지만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 '힉스입자' 존재 규명이 관건

= LHC 가동의 가장 큰 목표는 '힉스입자'의 발견이다. 도대체 힉스입자가 무엇이기에 전 세계 과학계는 발견을 고대하는 것일까?

힉스입자는 간단히 말해 입자의 질량을 결정하는 입자다. 물질 구성의 기본 단위인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돼 있고, 원자핵 내부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공존하며, 양성자와 중성자는 '쿼크'라는 입자로 구성돼 있다. 힉스입자는 바로 이 입자의 최소 단위인 쿼크부터 그 질량을 결정해 주는 입자다.

현재 물리학계에서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입자의 표준모형'에 의하면 세상에는 기본입자 12개와 힘을 전달하는 매개입자 4개, 그리고 힉스입자 등 17개의 입자가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표준모형의 기본입자와 매개입자 16개는 실존이 입증된 데 비해 힉스입자의 경우 전혀 존재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힉스입자가 존재해야 표준모형 자체가 성립되는 만큼 물리학계에서는 힉스입자의 발견이 넘어야 할 마지막 산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물리학자들은 힉스입자가 우주 태초의 빅뱅 순간에 잠시 존재했다가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고 설명한다.

이번에 힉스입자의 존재를 밝히는 과정에 입자가속기라는 특수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리학자들은 입자가속기 내부에서 양성자들이 서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힉스입자가 극히 짧은 순간에 그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프랑스 쪽 상공에서 내려다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전경. 노란색선은 지하에 묻혀 있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 터널로 무려 27㎞에 달한다. 작은 동그라미는 입자 간의 충돌을 일으키는 검출기와 관측기가 설치된 장소다.
우주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암흑물질'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도 LHC 가동의 주요 목적이다. 과학자들은 별 은하계 퀘이사 블랙홀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모든 물질 외에 정체불명의 암흑에너지가 전체 우주질량의 73%를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LHC는 이 암흑에너지를 규명하는 데 많은 단초를 제공할 것이라는 게 입자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을 전공하는 과학자들의 기대다.

이 밖에 이론상으로 존재하는 4차원 이상 10차원까지의 미세한 영역에 대한 연구도 관심사항이다.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세계의 공간이 정말 3차원인지를 오래전부터 의심해 왔다.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론과 작용하는 힘과의 관계를 모순 없이 설명하려면 기존에 알려진 4차원보다 차원이 6개나 7개 더 있을 때 내부의 모순이 없어진다는 것.

박성찬 서울대 물리학과 박사는 "LHC는 어떤 장치보다 더 정밀하게 더 작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물리학을 탐구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미세한 세계에 존재하는 여분 차원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입자의 모습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 거대강입자가속기는?

= 8조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든 LHC는 정말 인류에게 수지가 맞는 장사가 될까? 과학자들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기초과학과 물리학이 그동안 인류에 기여한 것을 살펴보면 LHC를 이용한 연구는 수백 배, 수천 배 남는 장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중력이나 관성의 법칙을 밝혀 냈기 때문에 인류는 현재 우주기술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우주기술이나 행성탐사는 돈이 막대하게 드는 일이지만 점점 인류의 생존을 책임지는 핵심 기술이 되고 있다. 전자기 발견과 이에 대한 후속 연구도 좋은 예다.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한 전기전자기술, 통신기술 등의 응용기술이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부분에 적용되면서 인류의 삶과 사고방식은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특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미시세계에 대한 연구는 '원자력'이라는 엄청난 도구를 인류의 손에 쥐여줬다. 불과 100여 년 전인 1903년 영국의 화학자 소디는 원자 속에 '엄청난 에너지가 포함돼 있다'는 당시로서는 황당한 주장을 폈다. 이후 영국의 러더포드 채드윅 등의 물리학자와 독일의 한, 오스트리아의 마이트너 등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이어지면서 원자력은 인류의 차세대 에너지로 자리잡을 준비를 마쳤다. 실제로 소디의 주장 이후 불과 50년 뒤에 세계 최초의 원자력발전소가 러시아에서 가동되면서 인류의 삶을 바꾸기 시작했다.

미세공간에 대한 연구가 훗날 시공간에 대한 혁명적인 응용기술이나 혁명적인 에너지기술 탄생에 공헌하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김은표 기자 /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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