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은 크게 혈관이 막혀 생기는 뇌경색과 혈관이 터져 생기는 뇌출혈로 나뉜다. 뇌혈관이 막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혈과 부스러기에 해당하는 혈전이다. 혈전은 동맥경화로 혈관에 기름기가 쌓인 데다 고혈압으로 혈관을 관통하는 혈액의 압력이 증가하면서 수도관의 녹이 떨어져 나오듯 생성된다. 주된 발생장소는 목의 경동맥과 심장이다.
다른 이유는 뇌동맥 자체가 동맥경화로 혈관의 구경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경우다. 전자의 경우 떨어져 나온 혈전에 의해 갑자기 증상이 나타나는 반면 후자는 서서히 진행되는 것이 서로 다른 점이다.
질환치고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없지만 뇌졸중은 특히 비극적인 결말을 맺는 경우가 많다. 예고 없이 찾아오므로 환자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여유마저 빼앗기 때문이다.
일본의 오부치총리도 뇌경색으로 쓰러진 직후부터 혼수상태에 빠져 변변한 유언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의식이 남아있다면 더욱 잔혹한 상황이 연출된다.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통나무처럼 드러누워 있는 상태에서 혀를 놀리지 못해 말을 할 수 없는 데 의식은 고스란히 남아 있고 눈은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다고 가정해 보라.
수년 동안 이렇게 누워 있어야 한다면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지옥 같은 생활이 될 것이다. 환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데 보고 들을 수 있으므로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은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뇌졸중은 사회 경제적으로도 가장 큰 부담이 되는 질환이다. 최근 인하대의대 사회의학교실 홍재웅 교수팀이 질병별로 한국인의 질병부담률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뇌졸중이 제1위 질환으로 나타났다. 질병부담률이란 특정 질병이 얼마나 흔하고 위중하며 치료비나 장애기간등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지 3가지 척도에서 살펴보는 보건지표다.
세계 제 2위의 경제대국의 수반으로서 주치의로부터 철저한 건강관리를 받았을 오부치가 왜 쓰러졌는가 하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뇌졸중 위험요인을 분석해 보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은 고혈압이다. 수압이 센 수도관이 잘 터지고 녹이 잘 떨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알기 쉽다. 고혈압 환자는 정상 혈압을 가진 사람보다 뇌경색의 경우 10배, 뇌출혈의 경우 20배나 높은 확률을 감수해야 한다. 보통 의학연구에서 10%만 발생률을 높여도 위험인자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10%가 아닌 10배의 발생률 증가는 가히 살인적이라 할 만하다.
흡연도 뇌졸중의 위험인자다. 흡연하면 흔히 폐암을 연상하지만 담배연기 속의 니코틴은 혈관의 건강을 갉아먹는 대표적인 독소이기도 하다. 니코틴은 동맥경화를 일으키며 혈액을 걸쭉하게 만들어 쉽게 응고 시키며 심장을 자극해 부정맥을 일으키거나 혈관을 수축해 혈압을 올린다. 흡연자는 비 흡연자에 비해 뇌졸중 발생률이 3배가량 높다. 그러나 오부치가 고혈압을 앓았을 리는 없다. 일국의 총리를 고혈압 상태로 방치하는 것은 주치의의 명백한 직무유기이기 때문이다. 오부치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의 뇌졸중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먼저 과로와 스트레스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오부치총리의 발병 직전 일정을 살펴보자. 토요일인 4월 11일 그는 아침 8시 20분쯤 관저를 나와 만 12시간을 강행군 했다. 세 건의 공식행사에 참석하고, 한곳의 시설을 시찰했으며 두침의 외빈을 만났다. 저녁엔 연립정권 이탈로 엄포 놓은 자유당 당수와 2시간을 실랑이했다. 관저에 귀가한 것은 저녁 8시. 오부치는 2일 새벽 쓰러지기 직전에 오자와 이치로 자유당 당수, 간자키 다케노리 공명당 대표와 당수회담을 갖고 오자와에게 연정 해소를 통보했다. 훗카이도 우스산 화산폭발에서 연정와해까지 사태수습을 위해 하루 서너 시간밖에 취침을 못하는 등 전시내각을 방불케 한 그의 빡빡한 일정이 뇌졸중을 낳았다는 것이다.
위기상황에 당치면 인체는 콩팥 위에 위치한 부신이란 내분비기관이 아드레날린이란 호르몬을 분비한다. 아드레날린은 혈압을 올리고 심장의 박동 수와 폐의 호흡수를 증가시키며 근육으로 혈액량을 늘려 짧은 시간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조물주가 고안한 안정장치인 셈이다. 문제는 매일 알람 벨이 켜지는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인체는 만성적인 아드레날린의 과잉분비 상태에 놓이게 되고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모해 체력이 떨어짐은 물론고혈압을 조장해 뇌와 심장의 혈관에 큰 부담을 준다. 많은 뇌졸중 환자들이 발작 전 과로나 스트레스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심장병도 오부치의 뇌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험요인이다. 오부치는 87년 심장발작으로 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다. 심장병 중 심방이 파르르 떠는 심방세동 환자의 경우 정상인보다 5배, 류마티스성 심장판막질환을 가진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무려 18배나 뇌졸중 발생률이 증가한다. 부정백이나 류마티스성 심장질환을 앓게 되면 심장에서 혈전이 잘 떨어져나와 뇌혈관을 틀어막기 때문이다.
집안 내력이나 평소 심성도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오부치가 삼수 끝에 와세다대학에 들어간 해인 58년 8월, 중의원 재선의원이었던 부친 고헤이가 뇌출혈로 급서했다. 유전적 소인이나 뇌졸중을 일으키기 쉬운 생활습관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분을 안으로 삭이는 태도도 문제다. ‘은혜는 돌에 새기고 한은 물로 흘러 보낸다. 는 그의 좌우명처럼 괴로움을 홀로 삭이는 내향적 성격이 몸 안에 언제 폭발할지 모를 화를 키워온 것이다.
오부치는 뇌졸중의 사전 경고증상을 무시하지 말라는 교훈도 준다. 뇌졸중 발작을 암시하는 대표적인 증상이 바로 일시적 뇌허혈증이다. 일시적 뇌허혈증이란 평소 조그만 혈전들이 떨어져 나와 작은 뇌혈관을 일시적으로 막았다가 다시 풀어지는 증상들이 반복되는 현상이다. 반신불수처럼 전형적인 뇌졸중 증상은 아니지만 일시적 뇌허혈증이 반복될 경우 나중에 본격적인 뇌졸중 발작이 올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일시 적 뇌허혈증 때 나타나는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 자동차 키를 돌리려고 하는데 손가락 놀림이 수월치 않아 애를 먹는다든지 무엇인가 머릿속에선 말을 하려고 하는데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 어눌한 발음이 나온다든지 하는 증상이 짧게는 수십 초에서 길게는 수십분 동안 지속됐다가 좋아진다. 오른쪽과 왼쪽 중 어느 한쪽의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거나 갑자기 어지럼증을 겪는 경우, 팔다리나 얼굴의 피부가 어쩐지 남의 살 같은 감각이상을 느끼는 경우도 일시적 뇌허혈증일때 볼수 있는 증상이다. 일과성 뇌허혈증이 나타나면 지체 없이 신경과전문의를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경우 아스피린 같은 항혈소판제나 쿠마딘 같은 항응고제를 복용할 경우 장차 찾아올 뇌졸중 발작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된다.
뇌졸중 발작시 가장 강조되는 금과옥조는 빠른 후송이다. 뇌경색의 경우 6시간 이내에만 도착하면 유로키나제나 TPA 같은 혈전용해제를 투여해 막힌 혈관을 다시 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뇌졸중 환자의 치료결과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환자와 병원간의 거리다.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환자일수록 아무래도 늦게 도착하므로 좋지 않은 치료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실제 혈전용해치료를 받는 뇌경색 환자 10명중 1명에서 뇌출혈 합병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머지 9명에게선 막힌 혈관이 개통되면서 마로 마비가 풀리는 등 극적인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